갑순이와 정돌이 이야기

갑순이와 정돌이 이야기 #13 - 연등제(2024-05-12/+1846/+57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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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순이와 정돌이 이야기 #13 - 연등제(2024-05-12/+1846/+575)

정돌맹이 2024. 5. 13. 16:36

부산에서 이사온 이후로 집앞에서 매년 연등제를 한다. 경기권에 살때는 몰랐는데, 부산에는 참 많은 절이 있다. 집 뒷산에도 두세개의 절이 등산로를 끼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매년하는 연등제 행사는 종류도 많고 규모도 크다. 사실 불교자체에는 크게 관심이 없으나, 어릴때 어쩌다 한번 휴가때 놀러가던 유명한 사찰이 참 향기가 좋고 편안하다고 느꼈던것 같다.  

장인어른은 종교적으로 믿으시는지는 모르겠으나, 티비에서나 보던 어릴때 학업을 위해 절에 들어가 공부를 했던 추억이 있으신 분이고 그때 당시 같이 공부하던 분들과 스님과는 지금도 연락을 하고 지내신다. 심지어 와이프와 결혼할때, 나와 와이프의 사주와 궁합을 봐주시기도 했다. 궁합은 안좋았는지 결혼했는데 말해서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하셨다. 
장모님은 힘든일이나, 바라는게 있으시면 기도하러 종종 가시는 것 같으나, 그것이 종교적인 믿음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기독교적 믿음과 불교적 믿음이 같은것인지 나는 모른다. 몇번 과거에 자녀들이나, 본인의 힘든 일을 해결해달라고 절에가서 백팔배? 이런 행위들을 하셨다고 들었던 기억이 있다. 
와이프와 처남은 종교적 활동은 없다. 그냥 부모님을 따라 주말마다 산책 또는 밥먹으러 가던 길에 있는 오래된 집 정도의 느낌으로 바라본다. 나에게 교회가 한개의 과자를 입에넣고 형과 누가 더 늦게까지 입에 물고있나 내기하던 장소였던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경기권에 살던 나에게 부처님 오신날은 가로수와 가로수 사이에 연등정도 다는, 이유는 모르겠으나 불교재단에서 전국에 연등을 다는데 돈을 쓰는 아까운 날이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크리스마스에게 지기 싫어서 하는 행사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올해 연등제에 가서 걷고 싶다는 와이프의 이야기가 있었다. 속으로는 '연등제 행사에 가면 나름 조명으로 화려하게 해두니까, 그런것을 보고싶나?' 라고 궁금해 했으나, '그냥 집 바로 앞 공원에서 행사를 하니 한번쯤 가보고 싶을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물어보지 않았다.

주말부부에게 주말은 눈감으면 지나가는 거라 약속은 했지만 갈 기회를 못잡던 어느날, 와이프가 주중에 아침부터 혼자 연등제에 가서 사진을 보내왔다. 근무중인 나는 와이프가 출근중에 지나가면서 몇장 찍어서 보냈나 하고 주의깊게 보지 않았다. 그리고 7시가 넘어서 와이프에게 전화를 하고나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보내주었던 사진 안에는 본인의 소망인 "우리의 화목과 아이를 가지고 싶은 소망"이 적혀있었다. 와이프가 자신의 소원을 누군가에게 부탁? 기도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과거의 내 경험을 통해 스스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달아야만 무교인이 기도를 하는지 알기에, 내가 생각했던것보다 와이프의 출산에 대한 고민이 큼에 미안했다. 특히 그 소원이 본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둘을 위한 것이고, 둘이 해야하는 것이었기에 혼자 힘들게 했던 것 같아 미안했다.

그리고 이번 주말에 수 많은 소원을 적은 그 길을 와이프를 기다리면서 걸었고, 천천히 만개는 족히 되보이는 다양한 소원들을 읽어보았다. 이성친구, 취업, 결혼, 로또, 건강, 먼저 돌아가신 이에 대한 보고싶음 등등, 만원짜리 연등이나 천원짜리 연등이나 비슷한 소원이었다. 그러나 와이프의 소원은 혼자였고 외로웠다. 

내일은 수요일에 있는 석가탄신일에 맞춰 집에 일찍 간다. 2시쯤 회사에서 출발하니, 와이프보다는 내가 먼저 집에 도착할테고,  세번째 나무 중간에 걸려있는 와이프의 소원이 외롭지 않도록 찾아서 내가 친구를 만들어줘야 겠다. 

혼자있게 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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