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순이와 정돌이 이야기

갑순이와 정돌이 이야기 #6 - 부산에 산다는것(2024-04-14/+1816/+59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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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순이와 정돌이 이야기 #6 - 부산에 산다는것(2024-04-14/+1816/+597)

정돌맹이 2024. 4. 15. 18:59

최근 부서를 옮기기 전까지 부산에는 30년 넘게 살면서 2번정도 내려갔었다. 출장때문에, 결혼때문에, 부서이동때문에 이제는 부산이 거주지가 된지 2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적응하지 못한 부분도 많고 의외로 좋은 부분도 많다. 오늘은 평생을 경기/서울권에서 산 내가 부산으로 이사와서 2년동안 느낀점에 대해 글을 써보려 한다. 

부산은 원초적이다. 사투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부산에 오자마자 느낄 감정일 것이다. 표현이 강한건 억양때문인가 하고 넘어갈수 있지만, 표현이 돌아가는것 없이 직접적이다. 거제도와 부산에서 살다가 최근에 서울로 올라간 조카들이 학교선생님이 친절하다고 말했을 정도니까, 나만 그런것은 아닐것이다. 또, 차량 신호가 바뀌었을때 바로바로 움직이지 않으면 쉽게 뒤에서 난리가 나는것을 볼수 있다. (어느 지역이나 그런사람들은 있지만, 유독 부산은 그 비율이 높은 느낌이다.)

네비는 거들뿐. 나는 그냥 택시를 타는것보다 카카오를 주로 이용해서 탄다. 택시정류장이 앞에 있더라도 좀 걸어가서 30~40m 떨어진곳에서 카카오로 불러서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왜냐면, 그냥 네비가 알려주는대로 가는것이 돈을 조금 덜내든 더내든 그냥 네비가 가라는 대로 가주시는것이 손님으로서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산은 유독 자기 마음대로 경로를 바꾸시는 기사님들이 많으시다. 특히 내리는 곳이 많은 부산역 같은 곳은 더더욱 심하다. 나는 분명 부산역 뒤편의 선상주차장으로 내려달라고 찍었으나, 부산역 앞 택시정류장에 내려주신다. "네비가 이상하게 알려주네 ..." 이러고 그냥 경로를 이탈해버리신다. 장인어른도 내차에 타시면 네비가 이상하게 알려주네 라고 말하시면서 1시간 동안 계속 경로를 말해주시기도 한다. 경기권에선 우스갯소리로  3명의 여자말, "엄마, 와이프, 네비", 을 잘들어야 한다고 하는데, 부산은 아닌가보다. 

서울만큼의 세련미는 없음. 세련미라 표현하는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떠오르는 단어가 없어서 일단 쓴다. 먼가 유명한 식당을 가고, 카페를 가고, 백화점을 가도 서울만큼의 섬세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넓은 땅에 넓게 좀 그럴듯하게 지었고 서비스를 한다. 마치 유럽에서 현대식 미술관과 오래된 성당을 들어갔을때와 비슷하다. 현대식 건물에 들어가면 그 깔끔함과 나름화려함에 놀라지만, 구석구석 보다보면 섬세함이 없다. 오래된 성당을 가보면 낡았지만 건축가의 정성이 느껴지는 섬세함이 있다. 부산이 딱 그런 느낌이다. 식당이 크고 화려하지만 막상 들어가서 먹다보면 이 고급식당에 이런걸? 할때가 종종 있다.  

1시간 이동? 장거리.  부산은 시간관념이 서울과 다르다. 1시간? 아니 30분만 이동해도 장거리로 들어간다. 출퇴근 왕복 2시간은 서울에서는 기본이지만, 장인장모님에게 나는 대단한 사위다. 장인 장모 모시고 기장이라도 다녀오는 날에는 엄청 고생한 사위가 된다. 본인들 옆에 살기를 원하시면서도 사위 출퇴근 40분 거리가 미안해 회사근처에 살라고 하시는 것을 보면 감사하면서도 재미있다. 

광역시치고는 싼 물가. 물가가 생각보다 많이 싸고, 식자재가 신선하다. 서울에서 1등급++ 한우(9)를 먹으면 못해도 1인분에 8만원은 생각해야 한다. 부산은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철마라는 곳에가면 4~5만원에 먹을수 있다. 부산에서만 파는지 는 모르지겠지만 부산 이마트에서 파는 송화버섯은 고기랑 먹으면 향이 진심 미쳤는데 생각보다 많은 양을 만원에 판다. 생각보다 부산 곳곳에 시장이 있어서 그런지 식당을 갔을때 체감적으로 느껴지는 단가도 낮은편이다.  

휴식, 산책의 끝판왕. 휴식을 위해 요즘 젊은 친구들이 자주하는 호캉스. 서울 시그니엘, 신라호텔, JW메리어트 등등등 서울의 럭셔리 호텔의 공통점은 창문밖으로 강이나 산이 보인다는 점이다. 그만큼 사람은 자연이 주는 편안함과 호텔이 주는 다른 의미의 편안함을 원한다. 나도 일산이나 서울살때 집돌이지만 가끔 나가면 한강공원이나 월미도에 가서 쉬다오거나, 일년에 몇번은 위 호텔에서 늘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차끌고 나가면 광안리고, 해운대다. 좀 더 나가면 기장이고 낙동강 하류의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다. 집돌이인 나와 반대로 정기적으로 나가야하는 와이프가 주말에 힘들어할때면 슥 드라이브 하면 바다다. 호캉스는 서울보다 부산에서 하는게 맞다. 산은,,,, 처음에 부산왔을때 느꼈던게 이 동네는 눈오면 올스탑해야할것 같다고 느낄정도로 오르막이 많은 도시가 부산이다. 부산이 이렇게 오르막이 많은줄 몰랐다고 놀러온 친구들도 놀란다. 공원은 놀라울 정도로 크고 사람이 적다. 부산하면 해운대, 광안리가 대표적이라고 생각하지만, 황령산을 가보지 않았다면 꼭 가볼것을 추천한다. 황령산에 올라야 부산을 본거다. 

<저녁에 산책갔다가 찍은 광안리 뷰... 광안리에서 보는 광안리보다 이쁜것 같다>

나도 그렇고 친형도 그렇고 와이프가 부산사람이다.  I 성향인 형제에게는 부산의 원초적인 성격이 마치 거부할 수 없는 리딩이었을지도 모른다. 보호까지 바란건 아니지만 마치 앵그리 트랜스레이터 같은 느낌? 
부산으로 이사오면서 왜 와이프가 저런 성격인지도 이해할 수 있었고, 음식은 거의 못하면서 조예는 깊은지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부산에서 참 잘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와이프에게 말하지만 여자든 남자든 내 아이도 엄마처럼 자기 의사를 잘 표현하고, 본인의 욕심이 분명하게 있었으면 좋겠다. 할말을 못해서 집에와서 억울하게 우는것보다 잘 해결은 못할지라도 왁!!!!! 하고 소리는 치고 화해를 하든 쌩까든 하는 성격이면 참 좋겠다. 

그냥 내 아이가 원초적인 성격이었으면 좋겠다는 한문장을 쓰기위해서, 이런 거추장스러운 글로 돌려 말하려고 있는것 부터가 난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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