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순이와 정돌이 이야기

갑순이와 정돌이 이야기 #5 - 부(富)(2024-04-12/+1814/+595) 본문

결혼이야기

갑순이와 정돌이 이야기 #5 - 부(富)(2024-04-12/+1814/+595)

정돌맹이 2024. 4. 13. 12:50

나도 그렇고 대부분의 직원이 출장 또는 조기 퇴근을 하는 금요일은 많은 직원이 사무실에 없다. 특히 팀장급이 없는 금요일은 직원들끼리 노닥거리기 좋은 날이기도 하다. (팀장님이 부담스러운게 아니다, 그냥 팀장이란 자리가 그런거다.) 우리도 팀장과 몇몇 직원은 없었고, 적은 인원이 들어갈수 있는, 평소보다 조금 먼, 맛집을 찾아 갔다.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 후, 옆에 있는 스타벅스를 마시러 갔고 주문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잠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앞에 한 남성분이 발리 신발, 비싸보이는 추리닝, 비싸보이는 안경, 그리고 오래전에 뻘컵?이라는 유투버가 차고온것과 비슷해보이는 100돈짜리 팔찌를 차고 왔다. 사실 손가락과 반대쪽 팔목, 목에도 화려한 쥬얼리는 많았지만, 100돈 팔찌의 화려함에는 비할게 못되었다. 속으로 '돈이 많은가?', '안무겁나?', '신발은 이쁘네?', '난 저돈이 있으면 머할까?', '유투번가?' 이런생각을 하고 있을때, 다른 팀원도 눈에 신경쓰였는지 '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허세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자신의 생각하는 적당한 부의 기준도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저런것이 부러운지 물었고, 나는 "저런 악세사리가 부러운게 아니라, 저 부로 할수 있는 자유로움이 부럽죠."라고 간단하게 말했다. 

나는 사실 부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세상에 화려함과 편리함에는 그렇게 관심이 없으시던 부모님의 영향이 크기도 했지만, 다른 집에 가서 자거나 다른 삶을 볼수 있는 유투버나 인스타그램이 없던 내 어린시절에는 부러울것도 없었다. 같은 동네에는 고만고만한 친구들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아마 '잘사는?, '잘나는?' 것에 관심을 가진것은 대학가서 시작한 연애때문이었을것이다.

군대가기전에 떠난 유럽여행에서 이화여대 발레과를 다니는 친구를 알게 되었고 이유는 모르겠으나 빠르게 서로에게 끌렸다. 결혼을 하기에는 어렸고 시기도 아니었으나, 유럽여행 이후에 부모님을 만나러 간 그때의 여자친구가 어머니의 가벼운 "결혼도 생각하고있니?"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하면서 우리의 관계는 어머님 입장에서는 가볍지 않아졌던것 같다. 모든것을 부산에 계신 어머니께 솔직하게 말했던 고작 대학년 2학년인 그때 당시 여자친구는 어머니의 '학력', '비전' 등에 대한 연애 반대 이야기를 나에게 그대로 전달했고, 그런쪽에 관심이 없던 나에게는 상처였다. 그렇게 나는 남자는 '능력'이라는 단어에 눈을 뜨게 되었다.  

전역 이후에는 우리집에서는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던 '잘나기 위해서', '잘살기 위해서' 노력했다. 학업도 최선을 다했고 대외 활동도 열심히 했다. 장관상도 받았고 성적도 좋았다. 하지만 이미 관심이 없던 시절 만들어진 나의 스펙은 바꿀수 없었고, 취업활동하는 과정에서 '이미 잘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몇번이고 다시 슬퍼져야 했다. 그래서 아래의 이전 글에서 말한것처럼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노력했을 것이다. 

2024.04.12 - [결혼이야기] - 2024-04-11(+1813/+594) - 직장 

 

2024-04-11(+1813/+594) - 직장

선거를 했고 잘해주기를 바랄뿐이라서 선거이후에는 크게 이렇다할 이슈가 없었다. 선거일에는 나가서 먼가 하려고 했으나, 기생수 6편과 나는솔로를 보고나니 그냥 그렇게 하루가 갔다.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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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대학원을 통해 학력세탁도 하고 나름 만족할때쯤 지금의 와이프를 만났고, 전혀 다른 富의 가치관을 보았다. 지금까지 만나왔던 여자친구들은 집안의 재력과 상관없이 비슷한 富의 가치관을 가진 부모님을 통해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버시는 만큼 모으는 집'이 아니라, '버시는 만큼 쓰는 집'은 신선했다. 처음 연애때 이걸로 몇번이고 싸웠고 의심했다. 사귀던 첫해 크리스마스때, 와이프가 식당을 예약했고 서울 시그니엘에 있는 '스테이' 식당이었다. 와이프는 초창기에 처남이랑 왔었고, 오픈세일로 쌌던 기억으로 예약을 했으나, 우리가 갈때는 인당 23만원이 넘는 초고가 식당이었다. 그래서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았던 ,진심 와이프가 돈에 대한 개념이 나와 안맞는다고 생각하던, 나는 와이프랑 투닥거리면서 식당으로 갔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돈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었다. 밥이 맛있어서 , 식당의 화려함에 취해서는 아니었다. 초고층 빌딩에서 보이는 밖은 화려했으나 거기에 비춰진 내모습은 흐렸다. 매일도 아니고 1년에 한 번 이런곳도 오지 못해서 와이프에게 화내고 있던 내 모습이 한심했다. '나는 연봉을 올리는 노력을 했던걸까?', '내가 말한 노력은 무엇이었을까?' 이런 생각을 했고 돈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대의 노력이 전문가로서 빛을 본거는 아니겠지만, 스스로 어기지 않고 행했던 성실함이 누군가의 소개와 추천으로 이어졌고 지금 직장으로 왔다. 

그런데 최근 연봉이 오르면 오를수록 더 벌기 위해서 들여야 하는 노력도 커지지만,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커짐을 느끼고 있다. 전자는 예상했던 부분이지만, 후자는 몰랐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수준의 부가 어느정도인지 찾으려고 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더 벌면서 자유로움을 느꼈기에 행복이 커지는게 더 많았지만, 그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내 자유로움을 억제하는 수준도 커지는것 같다. 그래서 딱 내가 원하는 아래 수준의 자유로움을 얻을때까지만 더 노력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와이프와 말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재산 목표치
1. 1년에 1번 유럽여행을 가족들이 원하는 수준으로 갔다올 돈을 모을수 있는 정도로 번다. 
2.  자식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수 있을정도로 번다. 
  * 단, 승마/하프 등 일반인이 받기 어려운 수준의 예체능 교육은 제한다.(와이프와 논의한 사항)
3. 최종 우리의 집은 서울에 있을 정도로 번다.
4. 결혼 5년차에 샤넬백, 10년 차에 에르메스 가방을 사줄 정도로 번다. 
5. 일년에 한번 가족과 좀 좋은 식당에 가서 먹을정도로 번다. 
6. 은퇴시점에 와이프와 합쳐서 월 600~700정도가 나올수 있도록 모은다. 

힘내라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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